 |
|
 |
[99호]여성주의 언론, 다시 고민하다 (코린 / 언니네트워크 편집팀 , cool_wom@hanmail.net) |
|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98년 10월 28일 사회적으로 은폐되고 폄하되었던 여성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남성 중심으로 치우쳐진 사회를 균열내기 위해 <여성신문>이 탄생했다.

<여성신문>은 당시 진보적 여성운동의 산물로, 여성운동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 여성신문의 발기인으로 참여했을 정도로 여성운동계의 지지와 후원을 받았다 한다. 소수의 권력에 의해 신문의 논조가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당시 <한겨레신문>이 도입했던 국민주 모금 방식을 도입했고, 1천여 명의 주주가 십시일반 해 2억 원의 자본금을 마련했다.
초창기 10년, 유일한 여성주의 매체로 고군분투
<여성신문>은 창간준비호부터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다. 당시 일간지 신문 1단짜리 기사로 처리되면서도, 그나마 남성중심적으로 보도되었던 여성 관련 이슈들을 <여성신문>은 상세한 취재를 바탕으로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재해석해 보도함으로써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예로 ‘경북 안동 30대 주부 사건’(1988) 보도를 들 수 있다.
‘경북 안동 30대 주부 사건’은 여성신문이 창간준비호에서 특집으로 내보낸 기사.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남성의 혀를 잘라 자신을 방어했으나 오히려 남성의 혀를 상해했다는 이유로 가해자로 몰려 구속, 기소 된 김 씨에 관련된 사건이었다. 일간지는 이 사건을 단신으로 보도하였으나 <여성신문>은 안동에 직접 내려가 상세하게, 지속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이를 이슈화시켰고, 여성단체들과의 연대해 김 씨가 1심에서 징역 1년형 받았던 것에서 2심에서 무죄를 받을 수 있도록 직접적인 기여를 하였다(이 사건은 김유진 감독에 의해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1990)로 영화화되었다).
<여성신문>은 이후 연달아 터진 ‘유년기 성폭행범 살해 사건’(1991년 1월), ‘성폭행 의붓아버지 살해 사건’(1992년 1월)을 집중 취재, 보도함으로써 당시 간헐적으로만 다뤄졌던 여성 성폭행 사건을 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이끌어냈다. 앞에서 언급한 사건들은 1993년「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령」제정에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는데, 이들 사건을 남성 편향적 보도에 머물지 않게 했던 여성신문의 역할이 직․간접적으로 법제정에 도움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성폭력 사건 외에도 <여성신문>은 주부의 가사노동 가치, 여성농민의 현실과 세력화, 부부강간, 이시형 할머니 이혼 소송 기각 사건 등 남성중심 사회에서 폭력으로 이름 붙일 수 없었던 여성에 대한 사회적 폭력을 고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했다. 이프(1997년), 언니네(2000년), 우먼타임즈(2001), 일다(2003년) 등의 여성주의 언론이 창간하기 전까지 10년간 거의 유일한 여성주의 저널로 존재했던 <여성신문>은 여성주의적 담론을 꾸준히 제기하며 사회적 소통을 시도하였다. 이는 <여성신문>이 싸워온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여성신문>이 이러한 족적을 남기는 길은 녹록지 않았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재정난. 발간 4개월 만에 초기 자본금 2억 원이 바닥나고 부채는 지칠 줄 모르고 쌓여가,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 항시 놓여있었다.
게다가 21세기 들어 다른 여성주의 매체들이 달라진 여성주의의 흐름을 반영하고 ‘여성주의적 글쓰기’를 시도하는 동안, <여성신문>은 여성관련 법 제․개정 활동, 집회 등을 통한 구호, 선언 외침, 여성들의 정치 참여 등의 내용을 여전히 주 이슈로 다뤄 수많은 지지자들로부터 ‘필체가 딱딱하다’ ‘시류에 민감하지 못하다’ ‘대중화와 운동성의 어중간한 양립을 버려라’ 등의 비판을 끊임없이 받았다.
그러다 설상가상으로 2002년 여성신문 이계경 전 사장(당시에는 현직)이 한나라당에 입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계경 전 사장은 2002년 대선 당시, <여성신문> 사장직을 사직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 직원들과 논의 없이 독단적으로 한나라당행을 감행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시기상조론’을 내세워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고 있었고, 보육 및 노동 등 여성 관련 정책에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여성운동계 인사를 영입해 여성의 표를 얻으려 했다. 이계경 전 사장은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민주당은 이미 잘 하고 있으니 내가 할 일이 없을 것 같아 한나라당으로 간다.’는 입당 이유를 밝혔지만, 여성신문이 그동안 쌓아온 진보언론의 의의를 훼손하는 행위라는 질타를 면하기 어려웠다.
이에 <여성신문> 측(경영진)은 이계경 전 사장의 한나라당 입당에 대한 내부 비난 여론이 거셌음에도, 독자적인 <여성신문>만의 입장을 내부 직원과의 조율을 거쳐 발표하기보다 이계경 사장을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분개한 5명의 기자들은 집단 사직서를 제출했고, 수많은 여성주의자들과 진보진영 사람들이 <여성신문>에 등을 돌렸다.
다시 여성주의 매체를 고민한다
<여성신문>이 20여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여성주의의 담론들은 보다 다양하고 세분화되었다. 구호와 선언, 입법활동 등을 통해 사회구조를 바꾸려던 움직임에서 21세기 들어 일상의 생활 속에서 수많은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를 감지하고, 소통하며 ‘이성애’ ‘비장애’ ‘남성’ 중심 사회를 균열내는 방식이 더해졌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체에서 살아남은 여성주의 언론은 <여성신문> 뿐이다.
이계경 전 사장 사건 때문에 한동안 뜨문뜨문 여성신문을 접하던 필자는 이번 원고를 통해 오랜만에 여성신문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여성주의 오프라인 매체가 연달아 폐간되고, 각 일간지 여성면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 속에 여전히 여성 관련 이슈들을 가득 담고 있는 여성신문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메인 화면을 채우고 있던 정치인과 세계 석학들, 단체장의 사진. 김효선 발행인 칼럼 란을 펼치니 ‘한명숙 ‘여성주의’를 잠시 접어라’(2006.4.21), 후보경선 패배 후 패배를 시인하며 물러난 박근혜를 ‘아름답다’ 칭하는 ‘박근혜가 남긴 것’(2007.8.24),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남길 것- 여성을 위한 ‘실용정부’를 기대한다’(2007.12.28) 등을 접하며 살짝 불편함을 느꼈다.
‘페미니즘은 페미니스트의 수만큼 다양하다’는 말이 있다. 철저히 소수자 성을 바탕으로 여성주의를 이야기하는 언론이 있다면, 중앙 정치를 직접 공략함으로써 여성주의를 이야기하는 언론이 있을 수 있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나와 다른 ‘여성주의’를 말하는 언론이라 하여 ‘여성주의적이지 않다’는 위험천만한 발언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여성주의 언론은 ‘남성’ ‘비장애’ ‘이성애’ ‘정규직’ 등등의 조건을 갖춘 소수만이 우위를 점하는 사회 구조를 여성들의 언어로 균열내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글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끄집어내는 행위 또한 여성주의적인 방식이어야 하고 말이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열린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필수고.

그러나 만약 여성주의 언론을 표방하며 위에서 말하는 것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필자는 그 언론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여성신문 외에도 우리는 다른 여성주의 언론들의 ‘대략 난감’ 사건들을 지켜봤다. <이프>는 독자들과 필자들, 심지어 내부 기자들에게 일절 언급 없이 갑작스럽게 잡지를 폐간하고 편집부 기자들을 정리해고한 뒤, 초창기 멤버들(이프의 정체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을 다시 끌어들여 ‘완간호’를 만들었다. 철저한 소수자성을 바탕으로 여성주의 논의에 활기를 주던 <일다>도 최근 기자 4명이 운영진의 의사결정 방식, 운영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다 결국 집단 사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는 여성주의 언론을 통해 울고, 웃고, 위로받았다. 때론 여성주의 언론들이 ‘남성 조직’과 마찬가지로 ‘연령주의’가 판을 치고, 위계적이고 권위적으로 운영되고, ‘난감한’ 논조의 변화를 일으키는 모습들을 목격하며 분노하기도 했다. 돈 나올 데가 없어 빚으로 간간히 운영하다 결국 매체를 폐간하고 마는 안타까운 모습들도 지켜봤다. 재정난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함에도 여성주의 언론들은 논조에 있어서도 항상 치열한 견제와 비판에 놓일 수밖에 없는 힘겨운 상황에 있다. 그렇다고 어떤 주장을 하던 ‘우리 편’이라고 끌어안을 수도, 조금만 시각이 다르다고 ‘여성주의적이지 않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성신문이 성년식을 맞는 올해, 많은 여성주의 언론이 문을 닫고, 어떤 ‘주의’라는 단어가 피곤하다고 여겨지는 현재, 여성주의 언론은 무엇이며, 어떤 시각으로 여성주의 언론을 바라봐야 할지, 어떻게 여성주의 언론을 구성해가야 할지 좀 더 심화된 고민이 요구되는 시기인 것 같다.
이미지 출처(위에서 순서대로) blog.naver.com/babtol2000/90029527127 waytoblue.egloos.com/1300770 http://www.ralphmag.org/BN/rejection-slip2.html
참고문헌 「여성주의 매체의 정치학과 딜레마에 관한 연구」(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 논문, 황금희, 2002) ‘민변 여성인권위, 여성신문 상 반납’ (<오마이뉴스> 2002년 10월 31일)
* 글을 퍼 가실 때에는 출처를 꼭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언니네 채널넷(www.unninet.co.kr) 2008년 8월 특집 '페미디어' 中 |
|
 |